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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지.... 카테고리를 만들고 타이틀을 고민하고 글을 쓰면서... 알아가고 있다. '나'를 만나러 가는 지금 이 길이 즐겁다 춤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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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저소득층 청소년 음악교육 ' 시스테마' 통해 세계적 거장 구스타보 두다멜이 성장했듯

꼴롬비아 소외 계층 청소년 무용교육을 통해 성장한 이들이 바로 '몸의 학교'이다.

 

몸의 학교 1997 9 꼴롬비아 까르따헤나에서, 무용수이자 안무가,  교육자인 꼴롬비아 출신의 알바로 레스뜨레뽀(Álvaro Restrepo) 프랑스 출신 마리 프랑스 들뢰뱅(Marie France Delieuvin) 의해 설립되었다. 예술 감독이자 교육 감독으로서 그들은 어린이, 청소년, 일반 대중들이 무용이라는 다른 형식의 언어를 통해 몸으로 전달되는 표현적이고 예술적인 분야를 접할 있는 공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몸의 학교이다.

 

11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2008) 통해 소개되는 '몸의 학교' <몸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10 18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공연에 앞서 안무가이자 교육자 알바로 레스뜨레보(Alvaro Restrepo) 인터뷰를 통해 '몸의 학교' 역사와 철학, 활동에 대해 들어봤다.

 

백만 주민들 70% 이상의 사람들이 빈민층 이하의 삶을 살고 있는 까르따헤나. 중에서도 가장 빈곤한 지역 출신의 아이들이 모인 몸의 학교는 단순히 빈민층을 위한 무용프로젝트가 아닌 '사회 통합' 위한 일종의 실험의 장으로서 평가받고 있다알바로 레스뜨레뽀는 스스로의 유년시절을 고문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매일 매일 견뎌내야만 했던 온갖 모욕과 폭력.  그의 몸이 낱낱이 기억하고 있는 상처와 고통의 시간을 밑거름으로 하여 그는 '몸의 학교' 만들었다고 한다.  

남미인들에게 춤이 일상이고 생활이라는 것은 이제 일반화된 상식이다. 꼴롬비아의 까르타헤나 지방 역시  춤이 하나의 예술적 언어가 아닌 의사소통의 수단이 되는 곳이다. 사회적 인종적 경제적 차별이 만연한 곳이지만 반면 문화적으로는 풍요롭고 다양하며 몸의 지성이 발달된 . 곳에서 재능과 열정을 가진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삶의 기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예술적으로 몸을 표현하고 존엄과 배려로 몸을 다루며 몸에 내재되어 있는 다양한 언어와 방향의 가능성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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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뜨레보는 '몸의 학교'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떤 신체적인 조건이 아닌 바로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어린이 청소년 스스로의 욕망과 열기, 열정이라고 한다. 스스로 학교를 찾아 다니며 무용수를 선발하는데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보여준 다음 학교장과 교사들의 동의를 구하고 협조를 받아 학생들을 '몸의 학교'로 초대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곳에서 춤에 대한 경험에 앞서 ''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경험한다.

 

인간의 몸에 대한 새로운 윤리학을 바탕으로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크게 두 가지고 나뉜다.

'무용에 대한 교육' '무용과 함께 하는 교육'이다. '무용에 대한 교육'은 학생들의 재능과 열정을 발견하고 그 후 무용수, 안무가,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전문적인 훈련을 제공한다. 전문 무용수, 예술인 양성 프로그램으로 기본적인 이론 수업과 무용 실습한 겸비한 8년 과정에 2년 간의 대학 수준의 과정을 더해 총 10년 과정으로 진행된다두 번째 '무용과 함께 하는 교육'은 각자의 직업에 도움이 되도록 무용수가 아닌 학생들에게 하는 교육으로서 이들을 이를 '필수신체교육'이라고 부른다. , 감각, 복합 자각이라는 기본 개념을 교육 과정의 핵심으로 하는데 몸은 우리가 살아가는 영역이자 범위, 평화의 존엄, 자존 그리고 다른 이들을 위한 존경의 터전이며 삶의 성스러운 가치에 대한 이해가 시작되는 곳이라고 레스뜨레보는 덧붙여 말했다. 이 두가지 교육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훌륭하고 세계적인 수준의 무용수들이 되지만 동시에 그들이 속한 사회에 변화와 희망을 몰고 오는 참된 인간, 지도자, 멀티 플레이어가 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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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몸의 학교를 찾는 청소년들 중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나쁜 길에 빠졌던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많지 않냐는 질문에 레스뜨레보는 몸의 학교 프로젝트가 치유보다는 예방책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는 '대부분 아이들은 모두 가난한 집안 출신이지만 다행스럽게도 나쁜 길로 빠지기 전에 '몸의 학교'를 알게 됐다는 점. 또한 레스뜨레보와 함께 하는 사람들  역시 치료 전문가나 정신과 전문의들이 아닌 예술가 겸 교육자이다.  이들은 아이들이 그들 안에 잠재되어 있는 열정과 재능을 발견하고 이 세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꼴롬비아의 전통적인 교육 방법에 대응해서 정규 교육의 틀 안에서 스스로 설 자리를 찾지 못한 아이들에게 자리를 만들어주고 주의력 결핍이라는 진단을 받고 리탈린을 처방 받은 아이들을 위해 공간을 제공하고 평범하지 않더라도 또 다른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되어 주는 것. 몸의 학교가 이렇게 아이들에게 춤을 통해,  교육을 통해 날개를 만들어주고 있다.

현재 알바로 레스뜨레보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몸의 학교의 후원자를 찾고 있다.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꼴롬비아 문화부로부터 후원금을 받고 있고 까르따헤나 시로부터 새 학교를 짓기 위한 만 이천 평 규모의

부지 매입 금액을 지원받았다. 지난해 일본 정부는 세계 은행을 통해서 몸의 학교가 까르따헤나의

가장 빈곤 지역에 우리들만의 교육 방법과 철학을 전파할 수 있도록 95만 달러 정도의 후원금을

지급했고 싱가포르의 아트 벤처 재단 (ARTS VENTURE Foundation)’몸의 학교의 몇몇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몸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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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11년 전에 함께 출발한 젊은 무용수들 주축이 되어 현대음악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음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몸과 시간은 이 작품의 주요 요소로 레스뜨레보는 자체가 바로 시간이며 우리들 각자의 시계와 심장은 이 세계에 우리의 존재를 알리는 표식이라고 설명한다. ‘음악과 움직임 연구라는 워크숍으로부터 출발한 이 작업은 대단히 어려운 올리비에 메시앙 음악 덕분에 무용수들과 안무가에게 큰 도전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메시앙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쟁포로로 수감되어 있을 때, 인류 멸망의 위기감을 토대로 작곡된 이 음악은 반쯤 파손된 악기로 수감자들에 의해 수용소에서 초연되었다. 요한계시록을 바탕으로 했지만 한편으로는 시간과 전쟁 그리고 비인간성에 대한 묵시록이기도 하다. 레스뜨레보와 아이들은 이 작품의 복잡한 상징성을 단순하고 지혜롭게 풀어가고 있다

<안무가 알바로 레스뜨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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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롬비아 현대무용 개척자 중의 한 사람인 알바로 레스뜨레뽀는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한국인 조규현을 소개했다. 뉴욕에서 만나 5년 넘게 함께 작업을 해온 조규현을 그는 자신에게 날개를 달아준 사람이라고 불렀다. 정신적, 육체적 그리고 영적으로 나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 그를 통해 알바로는 자신의 내면 속의 동양적인 성향을 발견해냈다고 한다 .

 나와 같이 콜롬비아에 왔을 , 조규현은 말했죠. ‘이곳은춤으로 가득한 이라고. 내가 돌아올 곳은 여기고 여기에서 내가 배운 춤을 꽃피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 그에게 보였을까요? 말에 대단히 감화 받은 저는 이후 그의 조언을 실현시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결과가 학교 입니다. 저는 조규현으로부터 개의 씨앗을 받았어요. 이는 그로부터 배운 불교철학에서의 연꽃과도 같지요.” 2007 12 월간

 

뉴욕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후에 정원사가 조규현. 결국 조규현이 레스뜨레뽀로 하여금 몸의 학교 설립하는데 영향을 끼친 셈이다.

   

바로 레스뜨레뽀는 콜롬비아 현대 무용의 개척자 중의 사람이다.
무용에 일생을 바치기 전에 그는 철학, 문학, 음악, 연극을 공부했다. 1981 콜롬비아 정부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제니퍼 뮐러(Jennifer Muller),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 머스 커닝엄(Merce Cunningham), 조규현(Cho Kyoo-Hyun) 등과 함께 뉴욕에서 공부했다.

레미 찰립(Remy Charlip), 조규현(Cho Kyoo-Hyun), 타마 로고프(Tammar Rogoff) 등과 함께 일을 시작했다. 1986 그는 창작의 중심이라는 뜻의 아타노르 단자(Athanor Danza) 무용단을 설립하고, 안무가이자 자신의 작품에 대한 해설자로 국제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페드리코 가르시아 로카(Fedrico García Lorca) 서거 50주년을 기념해서 만든 그의 번째 작품은 뉴욕의 마마 시어터(Mama Theater)에서 공연되었다. 후부터, 그는 라틴 아메리카 현대 무용의 선두주자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은 아메리카, 유럽, 아시아의 30 국가에서 공연되었다. 1992 그는 함부르크에서 열린 세계 여름 무용 축제(Internationales Sommer Theater Festival)에서레비스(Rebis)라는 작품으로 페가수스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극적인 상황에서의 성스러움과 종교적 의식 같은 분위기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1992년에 그는 콜롬비아 문화 연구소의 부원장(sub-director)으로 임명됐다. 다음해 보고타 예술 전문 아카데미의 대표로 임명되었으며, 이를 통해 그는 콜롬비아 국내 현대 무용 프로그램 중에서 최고급 레벨을 처음으로 창시했다.

1994 이후부터 알바로는 카르타헤나 인디아에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곳에서 프랑스 출신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마리 프랑스 들뢰뱅(Marie France Delieuvin) 만나 콜롬비아의 최초 현대 무용 안무 센터인 몸의 학교를 설립했다. 레스트레뽀와 들뢰뱅은 이를 통해 젊은 인재들을 발굴하는데 헌신을 아끼지 않고 있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2 동안, 사람은 카르타헤나 인디아에서기억 & 상상력(Memory & Imagination)’이라는 이름의 세계 예술 축제를 열었다.

알바로 레스뜨레뽀는 지금까지 여러 국가와 여러 행사에서 지도자, 강사, 심사위원으로 초청 받았다. 안무가로서 그는 프랑스의 국립 현대 무용 센터에서피아도소스(Piadosos)’ 디오스 마르(A Dios El Mar)’ 2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몸의 학교의 공동 대표이기도 마리 프랑스 들뢰뱅과 함께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레콘키스타(Recongquista) 몸의 학교를 위해 알마 라스 코사스(El alma de las cosas)’, ‘ 카미노 함브리엔토(El camino hambrienta)’, ‘쿠아르떼토 파라 쿠에르뽀(Cuarteto para el fin del cuerpo)’ 등의 작품을 만들었다.

<알바로 레스뜨레뽀의 세이헬로우 메시지>




 











 




 

남 탓하고 싶은 하루

Lifelogue/생활의 발견 | 2008/08/23 19:20 | Posted by 춤바람

나는 살이 잘 찌지 않는다.
일생(현재까지의)동안 뚱뚱 아니 통통했던 기억도 없고 목숨 걸고 필사적으로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유전적인 요인이 가장 크긴 하지만, 내가 살이 찌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움직임' 때문이 아닐까....

나는 많이 움직인다.
대화를 할 때에도 일을 할 때에도..
누가 먼저 움직이기 전에 내가 먼저 움직이는 편이다.
재빠르지. ㅋㅋㅋㅋ
그래서 인내심이 부족할 수도.. 기다리지 못해서....
(비단 몸을 많이 움직이는 걸 떠나 나는 생각도, 마음도 유연하게 잘 움직이는 편이다.)
빨빨거리며 움직이기 좋아하는 내가...그래서 살 찔 겨를이 없는 내가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 이다.
정말 죽겠다....

물을 마시려고 냉장고 문을 열려고 해도
쿵짝 쿵짝 균형잡히지 않는 걸음으로, 콩콩 엇갈려걷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집 안에서조차 움직이기 쉽지 않은데..
출근길은 더하다...
출근 길, 택시 잡는 것도 전쟁이다.
택시 스탠드가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은 교통 환경에서는 운이 좋게 먼저 앞서 가는 사람이
먼저 집어탈 수 택시는.. 과하게 많은 발을 가진 내게는 너무나 불리하다.
회사에 도착해서 빙빙 돌아가는 계단을 바라보면 정말 한숨만 나온다.
운이 좋게 첫 날 아침 팀장님과 만났다.
얍실한 당신의 등에 나를 업히면서 하는 말 '곽아람 출근 작전이네...'
다음 날, 똑같은 신세를 지기 미안해서 혼자 무리해서 4층 계단을 올라가다 결국
그 날 하루는 욱신거리는 무릎, 그로 인한 마음의 부담 때문에 하루종일 부대꼈다는..
싱크대에서 머리를 감아야 하고, 원하는 대로 옷을 입을 수도
올 여름 원껏 신고 싶던 하이힐도, 샌달도 다음 여름을 기약해야 한다.
비가 오면 목발 짚는 사람은 출근하기가 힘들다. 우산을 잡을 수 있는 손이 없기 때문이다.
찬 바람은 좋으나.. 뚫린 하늘은 원망스럽다.


결국 춤을 과도하게 좋아한 내 탓이지만,
누구의 말처럼 스스로 몸을 돌보지 못한 나의 미련함이 낳은 결과이지만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미룰 수 없기 때문에
마음이 이렇게 먹먹한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내 마음만큼
가장 일상적인 것을 해결할 수 없는 오늘....
그리고 앞으로 4주.... 또 이어질 재활의 시간....

쓸.쓸.하다.


TAG 부상, 일상

인내심을 발휘할 때.....

Swinglogue/춤바람나다 | 2008/08/17 10:02 | Posted by 춤바람

저는 요즘 춤을 춥니다.

딴따라땐스홀이라는 이른바 '문화예술계' 언저리에 종사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
스윙댄스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과 함께 말입니다.
새로 이사한
프린지페스티벌 사무국을 찾아갈 때는 짜증스럽게 먼 길로 돌아온 택시 아저씨 때문에 화가 나서 멋진 공간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프린지를 여유 있는 마음으로 축하해주지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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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5일 오!부라더스와 함께 한 홍대 앞 놀이터 게릴라 공연에서 photo by 소나기


그 때는 미처
 "안녕하세요~"라고 흐느적거리는 듯 느끼한 목소리와 적극적인 태도로 엽서 한 장 슬쩍 건네 준 한 사람으로 인해 서른 해를 맞은 지금이 '스윙과 함께'  라는 타이틀로
채워질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

춤에 관심있고, 춤을 추고 싶어서
무작정 친구를 끌고 가서 '지터벅'을 처음 배웠을 때,
'배움'에 익숙치 않은 제가 이렇게 뭔가를 열심히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일에 한참 지쳐있고 헤매고 있었고, 힘들었는데 음악을 듣고 춤을 추고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만나면서
저는 일상의 큰,
즐거움을 낚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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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촌스러운 교복으로 무장하고 홍대 앞 거리를 누비다...


엠티촌 우이동이라는 곳을 처음 가서 새벽이 맞도록 춤을 추었고,
영어학원, 스페인어 학원 등 의욕적으로 시작한 것에 제대로 끝맺음을 하지 못했던 제가
'개근'이라는 성실한 열매를 맺기도 했습니다.

지터벅과 찰스턴 8주을 지나서, 촌스런 교복과 다소 부담스런 헤어스타일로
홍대 앞을 누벼보기도 했고,
그리고 그 어렵다는 '린디' 수업도
너무너무 신나하면서 다녔습니다...

시댄스..그 살인적인 바쁨의 시기에
무리하게 프린지 페스티벌에서의 공연 멤버로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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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프린지 페스티벌 공연에 참가한 딴따라 땐스홀. 파트너 어니와 함께. photo by 헝가리


 

그리고..
저는 하늘을 날았습니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


음악을 듣고, 춤을 추고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지하 연습실에서 아무리 더운 여름이 와도 땀 때문에
고생해보지 않았던 제가
땀으로 여러 장의 티셔츠를 벗어던지면서...
그렇게.... 며칠을 보냈습니다...

실수는 있었지만
그리고 비도 왔지만

저는 어제 저녁 홍대에서 우리 '딴따라 땐스홀'의 친구들과 함께
Swing Sweat Pussycat이란 3분 10초의 음악과 함께...

기대감으로.. 설레임으로.. 춤을 추었습니다.


춤을 추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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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5일. 홍대 앞 공연 빅애플 photo by 당산철교



즐겁습니다..
그리고 행복합니다...

내 삶에서.. 또 다른 관심사를 찾고...
열심히 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았다는 것이...

딴따라와.. 스윙댄스는  저에게 '특별한 행운' 이란 키워드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딱 1년 전에 미니홈피에 쓴 글이다.
물론 몇 달 전에 딴따라 땐스홀 블로그에도 사진과 함께 이 글이 게재된 적이 있다.

내가 이렇게.. 이만큼 행복했었구나....싶다..
돌아보면 지난 1년 동안 나는 스윙댄스와 함께 상상 이상의 재미와 즐거움을 좇고 있었다.
이렇게 재미있게 즐겁게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때로는 위험스럽게 느껴질 만큼말이다.
이제 어쩔 수 없이 나는 당분간 춤을 쉬어야 한다.
삼촌은 스윙댄스니 뭐니 이런 건 생각도 하지 말라며 춤을 추고 싶으면 '고전 무용'을 배우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셨다.

춤을 출 수 없다는 건... 이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춤바람이건.. 댄스홀릭이건...그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그저 춤을 추고 싶은 한 사람의 팔로워라는 것.

나에게.....
춤은 이제 또 다른 삶이다.

조금만 기다리자...........
그리고 다시
하늘을 날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