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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03.26 소매물도에서

혼자 하는 심심한 여행
통영에서의 2박 3일 혹은 3박 4일....아니면 5박 6일... 이 될지도 몰랐던
대략의 계획만을 가지고 떠난 나른했던 이른 봄날의 시간에 어느덧 마침표를 찍고 돌아왔다. 횅한 바다 고적한 섬, 낚시배와 파도, 온통 풍경사진으로만 남겨진 메모리카드.
여행이 절실하지는 않았다.
이미 터키와 일본을 다녀왔고 일보다는 '춤'에 더 빠져있던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만 시간이 주어졌는데 어디라도 다녀오지 않으면
왠지 완벽한 휴가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압박감!
회사에 다시 출근한지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지났고출근시간이 10시에서 9시 반으로 당겨지는 별로 달갑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돌아와보니...의미없이 이방인처럼 돌아다녔던 그 시간들이 그나마 생각할 거리들을 주는 걸 보면 역시나 잘한 일인 듯.
작은 물병 대신 '옥수수 수염차'를, 먼지 낀 카메라 대신 캐논 EOS400D 행여나 충격받을까봐
가방 안에 꼭꼭 넣고 휘파람도 불지 못하고 늦은 밤에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지만
운동화를 신고 배낭을 메고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말 그대로 '출발'의 한 소절이었다.


첫 차를 타고 새벽 4시 40분 통영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역 앞 편의점이었을 것이다.  조용한 새벽 공기를 타고 유행가 한 소절이 흘러나왔다.
딱 15분 동안 정신이 멀쩡해진다는 말이 기억났다. 어느 드라마에서 였는데.....
정말로 그런가하는 마음으로..... 캔커피를 후루룩, 마치 우동 국물 마시는 것 같다.
역시나 달짝지근하다.
지도 한장을 챙겨서 택시를 타고 여객터미널로 향했다. 
10분 거리라고 하는데... 한참을 간다.
북적거리는 새벽 항구를 연상했는지, 조용하고 깜깜한 터미널의 모습이 조금은 실망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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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물도로 가는 첫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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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터미널에서 출항을 기다리며...찍어놓고 보니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해협의 해질 녁
풍경과 많이 닮았다.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배를 채우고 도시락을 사서 매물도 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역시나 멀미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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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공기가 좋다. 갈매기 소리도 귀를 즐겁게 하고 창밖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름 모를
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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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어놓고 보니 여느 관광책자에서 보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지만.
등산공포증이 있는 나에겐 매우 소중한 사진들이다.
소매물도에 도착했을 때의 나는 '급당황'.

민가라고는 손에 꼽히는 몇 채의 집
숨돌릴 틈도 없이 끝없이 올라가야 하는 그닥 친절하지 않은 등산로
졸린 눈. 미끄러지는 발. 무거운 가방. 

하지만 무엇보다 아쉬웠던 것은 높이 올라갔을 때 뺨에 닿는 그 신선한 공기의 감촉을....
마치 딴 세계에 있는 것 같은 이국적인 설레임을..
아니 마냥 좋은 그 풍경들에 대한 감상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없다는 것.
혼자였다.

 
통영으로 돌아오는 배안에서 한참을 잤다.
멀미를 이겨냈고 바닷가 짠 바람에 감기가 두려웠는데 두통도 사라지고.
조금은 힘이 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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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

아주 멀리까지 가보고 싶어.
그 곳에서 만날 수가 있을지.
아주 높이까지 오르고 싶어
얼마나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을지
작은 물병 하나 먼지낀 카메라 때묻은 지도
가방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변운 발걸음 닿는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멍하나 앉아서 쉬기도 하고 가끔 길을 잃어도 서두르지 않는 법
언젠가는 나도 알게되겠지
이 길이 곧 나에게 가르쳐줄 테니까
촉촉한 땅바닥 앞서간 발자국 처음보는 하늘 그래도 낯익은 길
언덕을 넘어 숲 길을 체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새로운 풍경에 가슴이 뛰고 별걸 아닌 일에도 호들갑을 떨면서
나는 걸어가네 휘파람 불며
때로는 넘어저도 내 길을 걸어가네

내가 자라고 정든 이 거리를
나는 가끔 그리워 하겠지만
이렇게 나는 떠나네 더 넒은 세상으로

<김동률의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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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포러스 해협의 해질녁 풍경 Photo by Fehrat



작정하고 떠났다. 돌이켜보면 뭔가가 절실했던 거다.  

지난 연말부터 내 생활에  '터키'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역시 충동적인 일탈로부터 시작된 다소 위험한 기폭제였으니...
지금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어느 터키남자와의 인연(?) 이 시발점이었다.

어찌되었든 출장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이스탄불로 떠났다.
명목상의 출장.  터키여행관련 도서를 두 권이나 사서 읽었고 꼭 가봐야 하는 명소 몇 군데도
꼼꼼하게 체크해두었다. 터키남자들이 한국여자들에게 친절하다는 얘기는 이미 많이 들었던
만큼 그 친절한 사람들 중 옥석을 가르는 게 관건. 하지만 경계심 제로였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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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린 하늘 속 성 소피아 성당 photo by Hilary


소기의 출장 목적을 달성하고 이스탄불에 도착한 지 3일 째 되는 날
나는 상당히 찐하게 생긴 터키 남학생의 에스코트를 받고 택시에 탔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아 걸려오는 수작을 제대로 받아줄 수 없음이 안타까웠을만큼
눈이 즐거워지는 청년이었다) 그리고 술탄아흐멧으로 출발!

공기입자에서도 역사의 무게가 느껴지는 이스탄불 구시가의 모습은 구름낀 우중충한 날씨 탓에 왠지모를 비애감을 주었다. 2초를 넘기지 않는다. 눈만 마주치면 곧잘 상인들이 다가와 말을 건다. 일본인이지 중국인지 대략 상황파악이 끝나면 '잘 지내셌쎄요? ' 라고 묻는데 처음 보는 사람한테 갑작스럽게 박명수 식 어법의 우리말을 듣게 되면 그가 아무리 상업적인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냥 웃음이 나고 대꾸를 해주고 싶어진다.

성소피아 성당이 눈 앞에 있었다.
등 뒤로 블루 모스크 , 그리고 바로 그 앞에 그 친구가 있었다.

솔직히 그의 첫 멘트가 기억나지 않는다.  '영어할 수 있어요?' 였는지 '여행 중이세요' 였는지
어쨌든 그는 자신을 '포토그래퍼, 페랏'이라고 소개했다. 스물 여덟의 갈색눈동자, 곱슬머리, 작은 키의 터키 남자 상당히 스피디한 영어로 가는 곳마다 설명에 설명을 거듭하며 충직한 투어가이드가 되어 준 그 사람이 자칫 평범할 뻔했던 내 터키 출장에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주었다.
가이드 책에 소개된 이스탄불의 역사, 남녀상열지사의 뒷 담화, 위대한 전쟁의 기록, 이슬람교와 기독교 그리고 자유분방한 터키 젊은이들의 생각까지. 무엇보다 생활 속에서 이들이 먹는 음식, 간식, 지나다니는 길, 자주 들락거리는 슈퍼마켓과 게임방(?) , 축구와 터키남자, 터키식 티의 정겨운 문화까지.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친절했던 페랏.
그는 분명 나와 같은 경험이 적지 않았을, 마음을 풀어놓고 자유로워질 준비가 되어 있는 누군가와의 짦은 로맨스가 익숙한 친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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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바다를 상대로 장난질을 걸다.
                             나를 위해 특별한 요리를 해준 페랏 photo by Hilary


일탈이었다.
언젠가 나에게 로맨틱한 일탈을 선물하고 싶었고, 터키 그리고 페랏은 내게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추억과 시간을 주었다.

현재 페랏은 군복무 중이다.
터키 젊은이들도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하는데. 기간은 우리보다 짧다.
가끔  휴가를 나오거나 외출을 할 때면 메신저를 통해 말을 걸어오는데..
그는 항상 똑같은 질문으로 웃겨준다.

'Hi. Do you remember me?'

다시 가고 싶다. 그를 처음 만난 블루 모스크 정문과 그와 함께 갔던 터키 전통 음식점.
그가 장미를 선물했던 어느 시장길 모퉁이. 화려한 향신료와 티팟이 가득했던 시장통.
값싸고 달콤한 냄새가 인상적이었던 물담배 가게.
그리고 그가 자주 다니던 과일가게, 정육점.
마지막으로 보스포러스...

잘 지내지..?
당근. 아직도 너를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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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lmoon Dance Festival 2009



울창한 숲과 천 개의 호수, 자작나무와 사우나 그리고 한국껌의 역사를 새로 쓰게 한 '자일리톨' 나라 핀란드여기에 핸드폰 '노키아' 디자인 브랜드 '마리메꼬' 그리고 시벨리우스 '핀란디아' 민족주의 건축가 알바 알토까지
.


'
핀란드의 무용' 역시 우리에게 이미 낯설지 않다.  
2005
년과 2006 이미 테로 사리넨 무용단이 2007년엔 토미 키티 무용단이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 SIDance)를 통해 소개되어 호응과 인기를 얻었으며, 대전과 일산에서 노마디 프러덕션의 대표작이 공연된 있다. 또한 올 4월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에서 주최하는 '세계음악과 만나는 우리춤'에서는 핀란드 음악을 바탕으로 한 한국 무용수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기회가 마련되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여기에 '풀문 댄스 페스티벌'이란 이름 하나를 보태고 싶다
.

도시라는 단어보다 '마을'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인구 6,000여명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핀란드 중부의 작은
도시 쀼하야르비(Pyhäjärvi)에서
올해로 16회를 맞이하는 풀문댄스페스티벌(Full Moon Dance Festival, 이하 풀문)이라는
현대 무용축제가 열리고 있다. 1992년 시작된 풀문은 쿠오피오무용축제와 헬싱키 축제 등과 함께 핀란드를 대표하는 예술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처음 쀼하야르비 초입에 들어섰을 때의 내 눈과 마음을 놀라게 한 마을 풍경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적한 거리, 띄엄띄엄 발견할 수 있는,  심심한 표정의 사람들, 호텔 하나. 단출한 미용실, 학교, 마을회관, 미동 하나없이 고요한 호숫가... 지도에도 잘 나와있지 않은 작은 도시.

과연 이 곳에서 매년 여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풀문은 3년 마다 선정되는 예술감독을 중심으로 축제의 특징과 스타일, 그 방향이 결정되는데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노마디 프러덕션의 알포 알또코스키(Alpo Altokoski, 사진 아래 왼쪽)가 1996년부터 1998년까지 풀문의 2대 예술감독을 역임한 바 있다.  
발표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알포 알또코스키의 'Guardian of the Night' 가 제1회 풀문에서 초연했으며 1996년 위르끼 카르투넨(Jyrki Karttunen)이 안무가로서 첫 데뷔를, 2001년 작년 시댄스 개막작 '페트루슈카'가 초연을 했다. 또한 핀란드의 젊은 현대무용 안무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어린이, 청소년 등 아마추어 대상의 워크숍으로부터 시작된 안무워크숍과 음악, 비주얼아트, 디지털 미디어 등 무용과 인접 장르와의 다양한 연계 방식을 위한 전문 포럼도 지속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1대 예술감독 마르께타 비딸라는 4년 동안 풀문을 이끌면서 Open University of the Theater Academy와 상호 연계, 다양한 방식으로 안무워크숍을 발전시켰으며 알포 알또코스키는 조디악 센터와 오울루에 소재하고 있는 JOJO 무용센터와 새로운 파트너십을 형성했다. 또한 현대무용 뿐만 아니라 핀란드 민속무용과 플라멩코를 새롭게 변주한 작품을 소개하기도 했으며 젊은 안무가들 외 중견급 안무가들의 참여를 유도하며 풀문이 국제적 관심과 위상을 획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지나치게 핀란드 색채가 강한 핀란드 현대무용의 한계를 인식한 3대 예술감독 카타리나 멕레스터는 다른 유럽 단체들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추진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며 음악과 민속무용, 서커스와 연극 등 타 예술장르를 활용한 작품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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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ic Director Harri Kuorelahti


올해 새롭게 그 임기를 시작하는 예술감독 하리 꾸오렐라티(Harri Kuorelahti, 1966년생)는 16년간 헬싱키 댄스컴퍼니에서 안무가로 활동했으며 1996년 위르키 까르투넨과 함께 풀문 무대에서 안무가로 데뷔를 했다. 하리는 앞으로 풀문이 세계 무대에 핀란드 무용을 소개하는 실질적인 댄스플랫폼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하며 문화교류의 기회를 확대할 포부를 안고 있다. 또한 젊고 실험적인 작품들의 소개와 함께 쀼하야르비의 아름다운 자연을 활용한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고 싶어 했다.


제 16회 풀문댄스페스티벌은 7월24일부터 28일까지 5일간 공식참가작 22편과 연극과 영화 등 비공식 참가작, 안무워크숍, 포럼, 클럽 파티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번 풀문 방문은 핀란드 정부의 공식 초청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시댄스 사무국의 김신아 차장과 함께 생애 처음으로 유럽 대륙에 발 도장을 찍게 되는 행운을 안았다.
총 6일 동안 쀼하살미의 작은 호텔에 머물면서 우리는 축제의 처음과 끝을 함께했다.

아직도 북유럽을 향한 나의 환상과 기대를 무참하게 저버렸던 그 처음 순간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뮌헨과 헬싱키를 경유하며 낯선 공항 여기 저기에 발을 붙이고, 입에 맞지 않은 딱딱하고 차가운 빵으로 속을 달래면서 약 24시간을 보냈다. 힘들지만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이제 곧 펼쳐질 환상적인 북유럽 체험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눈이 부신 플라티나 블론드와 파란 눈을 가진 북유럽의 멋진 벨 보이의 에스코트를 받아 안락하게 꾸며진 호텔 방문을 열면, 푸른 숲과 투명한 호수가 눈을 환하게 해주겠지...그리고 몸 속까지 개운하게 해줄 핀란드의 청명한 공기.
그러나....


투박하고 촌스러운 말투, 무뚝뚝해 보이는 얼굴. 팔이 끊어질 것 같은 무거운 짐을 들고 좀 도와줬으면 하는 눈짓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앞서 걸어가는 호텔 쀼하살미의 안내 직원.
나중에 들었는데, 핀란드 호텔에는 모두 자기 짐은 알아서 챙기고 옮기지 특별히 벨보이의 개념이 없다고 했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호텔방. 손톱만한 창문은 제대로 열리지도 않는다.
이것이 과연 비행기를 2번이나 갈아타며 장난감 같은 경비행기에 몸을 싣고 생명의 위험 부담까지 안아야 했던 노곤함에 대한 적확한 보상이란 말인가...? 게다가 기대 이상으로 추운 날씨 탓에 몇 일을 우울한 색깔의 긴 팔 티셔츠로 보내야 했다.

아침 일찍 호텔에서의 아침식사를 시작으로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었다.
떠나기 전 아무리 축제 측에 메일을 수십 번 보내고 자료를 요청하고 문의를 했어도 출발하는 날까지도 '오시오' 하는 답신 외에 전혀 어떤 정보도 얻지 못했기 때문에 과연 이 곳에 누가 와있는지 알지 못했다.  11시 프레스 콘퍼런스에서야 비로소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이 마을로 찾아든 세계 각국의 축제 디렉터와 프로그래머, 무용단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프레스 콘퍼런스는 기자들과 초청 게스트들을 대상으로 매일 오전 11시에 진행되는데 당일 공연예정인 아티스트들이 나와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작품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이다. 영어로 진행되며 혹시 영어가 불편한 아티스트가 있을 경우 예술감독 하리가 직접 통역을 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공연은 VPK Theater와 Inmet Areena, Photi House  세 군데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이는 각각 마을회관과 소방서, 아이스하키 경기장 그리고 스포츠 홀을 공연 무대로 새롭게 창조한 공간이다. 이외에도 미용실, 기차역, 까페, 거리 곳곳이 축제 기간 내 공연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었다. 특히 Inmet Areena 아이스하키 경기장은 테로 사리넨 컴퍼니의 '페트루슈카' 초연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단다.


관객들은 대부분 무용전공 학생들과 참가 공연단체 관계자, 해외 초청게스트 그리고 핀란드 다른 지역으로부터 온 관객들과 쀼하야르비 주민들이다. 도시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가족단위 관객, 학생들, 상가주인들. 공연의 유명 여부를 떠나 대부분의 공연장에 2시간 전부터 대기하고 있는데 이것은 모든 공연이 비지정석으로 운영되기 때문.  쀼하야르비의 주민들을 제외한 많은 사람들의 경우 풀문 참석만을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평소 무용에 대한 관심과 전문적인 지식도 풍부하다.  준비된 관객이라고 해야 하나...

미용실 앞에서 핀란드 안무가 베라 네발리나(Vera Nevalinna)의 영상 퍼포먼스를 보다 만난 씨르빠 헤이키넨(Sirpa Heikkinen, 사진 위)은 오울루(Oulu)에 살고 있는 올해 나이 59세의 기자이다.
현재 오울루의 일간지 '깔레바'(Kaleva)에서 역사 컬럼을 쓰고 있는 씨르빠는 벌써 15년째 풀문에 참석하고 있다. 테로 사리넨이 한국을 2번이나 방문했다는 내용부터 매번 공연 때마다 무용수들의 이름과 경력을 상세하고 알고 있어서 초특급 무용 마니아인가보다 생각했으나 알고 보니 역사 컬럼을 쓰기 전 30년 동안 무용 컬럼을 써왔단다. 올해는 여름 휴가를 이용해 풀문에 참석 중이라며 자랑했다. 누구의 작품을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나에게 위르끼 까르투넨의 <휴먼 이미테이션>을 강력 추천했다. 내가 한국에서 이 공연을 본 적이 있다고 얘기하자 마치 자기 일처럼 좋아하고 흥분하기도 했다. 씨르빠는 축제가 끝난 28일, 정확히 말하면 29일 새벽 마지막 클로징 파티를 마치고 오울루로 돌아갔다.

클로징 파티와 같은 댄스파티가 기간 중 2번 있었는데, 당일 공연일정이 마무리 된 후 호텔 안 잔디밭에 마련된 천막에서 공연단체들과 축제관계자, 게스트 그리고 관객들이 함께 모여 즐기는 댄스파티이다. 라이브 밴드가 끊임없이 음악을 연주하고 참가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춤을 춘다. 따로 제공되는 음식은 없지만 내부에 맥주와 소시지, 핀란드식 피쉬 샌드위치를 판매하는 Bar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원하는 사람은 각자 알아서 사먹을 수 있다.
심심하고 볼 것 풍부하지 않은 풀문에서 나름대로 가장 흥분되었던 것은 바로 파티였다.   춤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성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부러웠던 것 중의 하나는 관계자들과 공연자들 그리고 관객이 하나되어 즐길 수 있다는 것. 공연팀들도 본인의 공연이 끝났다고 바로 짐 챙겨 떠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축제와 함께한다. 다른 아티스트의 작품을 보고  안무가와의 대화나 워크숍까지도 관심있게 참석하는 등, 또 하나의 관객으로 축제를 즐긴다.

여기까지만 보면 풀문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들썩거렸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공연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거리는 여전히 한가하고 적막하며 사람들도 붐비지 않는다.
대형 수퍼마켓을 제외한 대부분의 상가들은 5시면 어김없이 문을 닫는다.
길을 걷다, 운전을 하다 거리 퍼포먼스가 진행되면 그냥 멈춰 서서 보거나 혹은 그냥 지나쳐 갈 뿐.  호들갑스럽게 사진을 찍는다든가 요란하게 뭔가 번쩍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많은 예술축제가 그러하듯 풀문 역시 적은 규모의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예술감독과 예술감독이 선정한 기술스태프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축제 스태프들은 쀼하야르비 지역 사람들로 구성된다. 5~6명의 축제 스태프는 인근 학교 교사이거나 학생들로 모두 자원봉사로 참여하고 있다. 전문 인력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지역 환경을 잘 알고 있고 오랫동안 풀문의 관객으로 함께 했던 사람들이라 소박한 포스가 느껴지곤 했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 풀문은 예술감독이 3년 마다 축제를 맡아 운영하며 자신만의 스타일과 예술적 기지를 발휘, 그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다. 꽤나 그럴 듯한 단어의 조합으로 예술감독의 위치 및 역할이 포장되었지만 사실 풀문의 예술감독은 축제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을 관할하며 이를 처리할 수 있는 만능 예술가 겸 행정가 겸 진행자가 되어야 한다.
처음 호텔에 도착해서 다소 민망한 차림으로 컵라면에 물을 붓고 있을 때  마주친 하리 꾸오렐라티는 매우 성실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가진 독신의 예술감독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마을 전체를 누비며 축제의 A부터 Z까지 모든 책임지는 해결사.
프로그래밍부터 기술팀 섭외 및 진행, 공연단체 섭외와 관리, 프레스 콘퍼런스 진행과 통역 심지어는 극장 문 단속부터 인터미션 안내방송, 길 못찾고 방황하고 있는 외국 게스트 챙기기, 파티장에 모자란 맥주 퍼다 나르기, 외국 게스트 핀란드 사우나 체험시키기.
자전거를 타고 전화를 받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것까지 놓치지 않는 그는 진정
풀문의 욕심쟁이 예술감독 우후훗!!
올해 풀문을 찾은 모든 사람들이 그의 성실한 미소와 진심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참가 예술가와 관계자들의 축제에 대한 애정을 통해 풀문이 핀란드 현대무용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올해 소개된 작품들 중 상당수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자연과 인간의 교감, 그 안의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에 대해 말하고 있는 <Taikurk>는 무용교육자이자 안무가로 핀란드 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안무가 에르비 시렌의 오랜 만의 신작이자 알포의 솔로 공연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알포 알또코스키란 이름을 가진, 핀란드가 사랑하는 무용수이자 안무가의 무대가 내 눈에는 그저 그늘진 늙은 거죽의 위상만을 확인시켜준 작품으로 보였다면, 지나친 말일까? ^^

마론 인형 같은 세 여자 무용수들의 유혹적인 눈빛 카리스마가 인상적인 씨모 켈로우쿰뿌 컴퍼니 Simo Kellokumpu Company의 <Gorgeous Gavin>은 영상효과나 눈을 유혹하는 여자 무용수들만으로 60분의 빈 무대를 충족시킬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 외에는 70년대 뉴욕 뒷골목의 레스토랑을 연상시키는 싸구려 무대와 설득력 없는 캐릭터들의 등장으로 공연 내내 지루함만을 느끼게 한 위르끼 하팔라(Jyrki Haapala)의 <Va Por Ustedes!>
그리고 토미 키티(Tommi Kitty)의 신작 <Darlings>과 리세 펜띠(LIISA Pentti+Co)의 <Travel>등이 소개되었다.

예술감독 하리의 아이디어로 구성된 Absolute Finland는 핀란드를 대표하는 안무가들의 가장 핀란드적인 작품 모음으로 관객들로부터 큰 환호를 받았으나 핀란드적인 코드와 유머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그들의 스타일을 가슴으로 느끼면서 자발적인 감정의 공유까지를 기대하기는 무리하고 해야 하나...
그나마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한 테로 사리넨의 <Westward ho!>와 <Wavelenghts> 그리고 <Hunt>와 서커스와 라이브 음악, 저글링 등으로 북유럽의 동화적 감성을 전달해준 Crico Aereo&Rinneradio의 <Fritt Fall>이 이번 풀문의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한국에 소개된 테로 사리넨은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그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고 <Fritt Fall>은 귀엽고 아기자기하며 동시에 색다른 음악 체험의 기회를 주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풀문을 통해 찾은 가장 큰 보석은 바로 한국인 무용수이자 안무가 이선아였다.  2007년 요코하마 댄스컬렉션에서 <Performing Dream>이란 작품으로 일등상인 프랑스 대사관 특별상을 수상한 이선아는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의 디렉터 마꼬토 이시카와 씨의 추천으로 핀란드-일본 간 레지던스 프로그램 무용수로 풀문에 참석했다. 그리고 수잔나 레이노넨(Susanna Leinonen)의 공연이 취소되면서 어울리지 않지만 Absolute Finnish의 한 프로그램으로 공연 기회를 얻었다. 감정표현이 서툴게만 느끼던 핀란드인들이 마치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시원하게 웃고 신나할 때, 멀뚱멀뚱 서로의 뚱한 표정만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했던 차장님과 나는 이선아의 차례가 되자 괜히 마음이 불안하고 떨렸다.  그러나 이선아가 무대에 서서 그 작은 몸으로 넓은 무대를 장악해나가는 순간. 모든 것이 기우로 변하면서.. 우리는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몽환적인 분위기, 꿈의 세계를 표현한 그의 독창적이며 신선한 에너지가 전달되고 있었다.

그 동안 지루하고 거칠고, 친절하지 않은 공연만 보다가 이선아의 모습을 보고 갑자기 눈이 환해지는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이 낯선 땅에서 천연덕스럽게 꿈꾸고 웃고 춤추는 모습을 보면서, 촌스럽지만 왠지 가슴까지 뭉클해지는 기분이랄까....

총 5일 동안 쀼햐야르비라는 작은 도시에서 다양한 국적을 가진 많은 사람들과 몸을 통해 사유하고 꿈꾸는 여러 스타일의 핀란드 안무가와 무용수들을 만났다.

때로는 지루하고 힘든 시간 속에서 알게 된 가장 부러운 핀란드적인 요소는
자신의 예술적 감성과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예술가와 그것을 기꺼이 지켜봐주는 관객들, 그들 간에 형성된 다년 간의 소통의 경험이었다.
내 머리 속에 끊임없이 짜증스러운 물음표만 낳게 했던 대다수의 공연들 속에서 공연장을 찾은  시골 농부와 작은 양품점 가게 주인, 그리고  레스토랑 주인은 끝까지 웃음과 박수로 보답해주었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관심 있게 지켜보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한 사람의 관객으로 박수를 보내줄 수 있는 여유. 공연의 질은 기대 이하였지만 관객들의 질(?)은 기대 이상이었다.  

16년 동안 이 도시에서 매년 여름이면 벌어진 그 예술적 사유와 역사의 경험을 단 한번의 방문 체험으로 규정짓는다는 것은 매우 건방진 일이다. 비록 한껏 부풀어있었던 '북유럽'에 대한 나의 진지한 환상과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했지만,
그 안에서 있었던 실험적이며 도발적인 시도와 스타일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싶다.
관객들이 올 것 같지도 않은 한적한 도시에서 관객개발이 가장 힘들다는 현대무용축제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지금 수많은 핀란드 무용인들과 지역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국제적인 축제로 일궈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조용하지만 진지한 눈빛으로 제 몫을 다하며 다음 풀문을 다시 방문할 것이라고 말하는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산을 가진
풀문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스윙.. 만나다

2008/03/04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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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따라 땐스홀의 두 번째 파티, 빽투더 땐스쿨


 스스로를 ‘운명적으로 춤꾼이 될 수 없는 몸치’라 일컬으면서도
누구보다 춤 출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친구가 있다.

 어린 왕자를 닮은 31살의 말띠 처녀. 그 친구가 그녀의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나에게 스윙댄스는 기적이다’ 라고
.

 집사람들의 과장된 칭찬과 자뻑의 기질을 빌려서 말하면

 나는 스스로 ‘운명적으로 춤꾼이 될 수 밖에 없는 몸’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하겠다.

 고음불가의 불편한 목소리 덕분에 노래방에서 주구장창 탬버린만 쳐야 할 운명이었으
 나
 썩 괜찮은 리듬감과 천재적 모방의 눈썰미를 타고난 덕분으로 노래방조차도 고고장
 으로,  땐스장으로 만들 수 있었던 나에게 '춤'은 취미이자 특기였고 오래 전부터 자연스
 러운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도 이렇게 얘기한다‘나에게도 스윙댄스는 기적이다’ 라고.

 작고하신 '차범석'선생도 다시 태어나면 '춤을 추는 사람' 이 되고 싶다고 하셨다는데
 나 역시 다시 태어나면 평생 춤을 추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다행스러운 건 그나마 뼈마디가 멀쩡하고 기운이 남아있을 때 춤을 추는 사람들의 대열
 로 합류했다는 것. 직업도 아니고 돈벌이도 안되는 단순 동호회에서 시작한 춤 인생이
 지만 그래서 오히려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예술춤이 아니라 작품성이란 잣대로 평가받을 필요도 없는 '대중춤'으로
 혼자가 아닌 둘이 만나야 하기에  외롭지 않는 커플댄스로
 록큰롤과 스윙재즈, 달콤한 사랑의 언어로 만날 수 있는 스윙댄스로
 '딴따라 땐스홀'이란 유치찬란한 공작소의 한 명의 구성원으로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만난 스윙과 나의 인연이 참으로 기적같다.
 

 나는 춤추는 게 참....좋다.
 '스윙'이라는 춤에 무지한 상태에서 시작했고 지금도 그것이 어떤 장르인지 지식수준은
 그저 그렇지만 지터벅을 지나 찰스턴을 넘고 린디홉의 세계에 맛을 들인 닉네임 힐러리
 (스스로도 이렇게 불리는 게 어색하다. 구, 땡감이라고 해두자) 에게 춤은
 그냥 '춤'이다.

 2분 30초 동안 달지 않은 공기 속에서 달콤한 숨을 쉴 수 있다.
 
 그렇게 춤을 추는 거다.

<딴따라 땐스홀과 함께 춤을 추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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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추는 슈테른. 빽투더 땐스쿨 파티, 2008년 3월 1일 째즈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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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따라땐스홀 눈2반의 졸업기념 스윙잼에서 2008년 3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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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따라 땐스홀 1주년 기념공연(07.11)/ 크리스마스 파티(07.12)/photo by 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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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따라 땐스홀 프린지페스티벌 참가, 2007년 9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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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따라 땐스홀 크리스마스 파티 2007.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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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지.... 카테고리를 만들고 타이틀을 고민하고 글을 쓰면서... 알아가고 있다. '나'를 만나러 가는 지금 이 길이 즐겁다 by 춤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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