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이 잘 찌지 않는다.
일생(현재까지의)동안 뚱뚱 아니 통통했던 기억도 없고 목숨 걸고 필사적으로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유전적인 요인이 가장 크긴 하지만, 내가 살이 찌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움직임' 때문이 아닐까....
나는 많이 움직인다.
대화를 할 때에도 일을 할 때에도..
누가 먼저 움직이기 전에 내가 먼저 움직이는 편이다.
재빠르지. ㅋㅋㅋㅋ
그래서 인내심이 부족할 수도.. 기다리지 못해서....
(비단 몸을 많이 움직이는 걸 떠나 나는 생각도, 마음도 유연하게 잘 움직이는 편이다.)
빨빨거리며 움직이기 좋아하는 내가...그래서 살 찔 겨를이 없는 내가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 이다.
정말 죽겠다....
물을 마시려고 냉장고 문을 열려고 해도
쿵짝 쿵짝 균형잡히지 않는 걸음으로, 콩콩 엇갈려걷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집 안에서조차 움직이기 쉽지 않은데..
출근길은 더하다...
출근 길, 택시 잡는 것도 전쟁이다.
택시 스탠드가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은 교통 환경에서는 운이 좋게 먼저 앞서 가는 사람이
먼저 집어탈 수 택시는.. 과하게 많은 발을 가진 내게는 너무나 불리하다.
회사에 도착해서 빙빙 돌아가는 계단을 바라보면 정말 한숨만 나온다.
운이 좋게 첫 날 아침 팀장님과 만났다.
얍실한 당신의 등에 나를 업히면서 하는 말 '곽아람 출근 작전이네...'
다음 날, 똑같은 신세를 지기 미안해서 혼자 무리해서 4층 계단을 올라가다 결국
그 날 하루는 욱신거리는 무릎, 그로 인한 마음의 부담 때문에 하루종일 부대꼈다는..
싱크대에서 머리를 감아야 하고, 원하는 대로 옷을 입을 수도
올 여름 원껏 신고 싶던 하이힐도, 샌달도 다음 여름을 기약해야 한다.
비가 오면 목발 짚는 사람은 출근하기가 힘들다. 우산을 잡을 수 있는 손이 없기 때문이다.
찬 바람은 좋으나.. 뚫린 하늘은 원망스럽다.
결국 춤을 과도하게 좋아한 내 탓이지만,
누구의 말처럼 스스로 몸을 돌보지 못한 나의 미련함이 낳은 결과이지만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미룰 수 없기 때문에
마음이 이렇게 먹먹한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내 마음만큼
가장 일상적인 것을 해결할 수 없는 오늘....
그리고 앞으로 4주.... 또 이어질 재활의 시간....
쓸.쓸.하다.
'생활의 발견'에 해당되는 글 8건
좌측 발목 인대 파열 & 무릎 연골 손상
한 달 전쯤. 공연 연습을 하다 왼쪽 발목에 이상이 생겼다.
며칠 조심하면 괜찮아지겠지...싶었는데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한의원을 찾아갔다.
부황도 뜨고 침도 맞고 건강한 발목에 괜찮은 컨디션으로 공연을 꼭 했어야 했기에
살금살금 조심하면서 그렇게 연습을 이어갔고 비록 압박 붕대의 도움을 받긴 했으나
과천, 인덕원 다소 무리스러웠던 7월의 공연을 마무리했다.
그 좋아하는 하이힐을 한 달만 참으면.. 미쳐있는 춤을 한 달만 적당히 추면
다시 나의 완소 발목을 되찾을 수 있을거라고 믿었는데.
나는 너무나 가혹한 주인이었나보다.
밤잠을 설칠만큼 고통스러운 이틀을 보내고 찾은 병원에서
좌측발목 인대파열과 무릎 연골 손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MRI는 대체 뭐의 약자인지...?
거대한 통 속에 들어가 암호같은 주문의 외계의 소리를 들으며 (이거 엄청 비싸다.. T.T) 잠들기를 두 차례.
결국 내일 나는 수술대에 오른다.
내 생애.. 처음으로 깁스라는 걸 하고 몇 주를 보내야 한다.
가혹하다...
그리고 미안하다.
수술을 마치고 이 틀이 경과했다. 핏주머니도 빼고 무통 링겔로 떼어내고 이제 보다 자유로워졌다. 깁스 모드로 4주를 보내야 한다고 하니.. 이제 좀 익숙해져야겠지...?
무선인터넷, 와이브로의 세상
이것도 순전히 갑작스런 입원 덕분에 하게 됐다.
사실 지금 우리 사무실은 전쟁이다. 10월로 축제가 코 앞에 다가왔고 이제 막 2차 전단이 뿌려지면서 온라인으로 오프라인으로 발 아프게 뛰어다닐 일만 남았는데. 지금 내가 이렇게 병실에 쳐박혀있을 때가 아닌데 말이다...
입원 첫 날 차장님이 노트북을 가져다주셨고, 여기 이 병원에서는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은 무리라는 걸 다음 날 아침 깨달았다.
'와이브로'라고. ㅋㅋ 이런 문명의 이기는 처음 시도해보는데...
이동하면서 초고속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무선 인터넷 서비스. 아직까지는 서울과 분당에서만 이용가능하다는 Wireless Broadband . ^^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여기 저기 전화를 해보고 나서 근처 KT 영동지사를 찾아갔다.
대략 정말 느리다. 그리고 질문을 해도 답을 하실 줄 모른다.
그래서 정말 화가 난다.
하지만 문을 열고 나올 때쯤이면...어렴풋이 알게 된다.
프로는 나이가 문제가 아닌 마인드의 문제가
아닐까....라는.
딱 한 분. 비록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나를 담당했던 분은 매우 신중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회원가입을 해주시고 내가 까탈스럽게 묻는 여러 질문에 천천히 설명을 해주셨다.
지금은 흐뭇하게 앉아 수술 전까지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업무를 보고 있다.
이거 아주 신기하다.
내가 이런 이동통신의 문명의 이기를 직접 내 손으로 해결을 하다니..
장하다. 땡감!!!!
덕분에 심심하지 않게 입원 일주일 째를 보내고 있다.
성인이 된 후 '여름 휴가'라는 걸 처음 다녀왔다.
어릴 적 가족들의 여름휴가지는 항상 계곡이었다. 대학 때는 딱히 휴가라는 개념이 무의미했고 열심히 선교 활동하느라 나름 거룩한 여름을 보냈다. 일하면서는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극단이든 축제든 워낙 불안정한 시스템으로 돌아가다보니 딱히 명목상으로도 '휴가'라는 것이
사치였으니까..
어쨌든 올해부터는 나에게도 휴가가 생겼다.
서해안 '호도'라는 곳이었는데, 사실 여기 지난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건으로 김장훈이 봉사활동을 갔던 섬이다. 작고 아담한, 조용한 섬이었는데 아마도 기름 유출 피해지역이라 그런지 성수기라 해도
성수기 같은 느낌은 전혀 없었다.
머물렀던 민박도 (이름은 '섬사랑이야기'로 다소 촌스럽지만..) 2층 테라스도 있고 무엇보다 시원하고 깨끗해서 며칠 푹 쉬었다 가기엔 부족함이 없었으니까.
워낙 해먹기를 귀찮아하는 성격이라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꼬박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었으나 휴가철 가사 노동은 굳이 나 혼자 하는 것만도 아닐 뿐더라 의외로 소꼽놀이하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강풍으로 수영질의 재미는 그닥 만끽하지 못했으나 해변에서 비키니도 입어보고 태닝도 해보고
물처럼 밟히는 규사 모래사장 산책도 즐거웠다.
풍랑으로 이틀 간 뭍으로 가는 배가 결항되면서 섬 마을 산책을 할 기회가 생겼는데...
우연히 들르게 된 보건소에서 사십 평생, 이 섬마을 보건소를 지켜온 선생님을 만나게 됐다.
예순을 훨씬 넘긴 나이에.. 미혼에 고양이 한 마리와 적적하게 병원을 지키고 있는 선생님은 벌써 한 달째 섬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고 했다.
대체 무슨 연유로 저 분이 혼자서 이 섬에서 평생을 살게 했을까...? 추측해봤다. 답을 내릴 수 없지만.... 분명 왠지 안타까운 연사가 숨어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여름 휴가는 끝이 났지만.. 아직도 휴가 기운이 더운 여름을 버티게 해주는 걸 보면...
3박 4일의 휴가가 약이 된 게 분명하다.
8월을 다갈 때까지
한 가지 사건 추가해서 넣기 ^^
천둥치고 번개치고 어떤 곳은 우박까지 내린다고 한다.
오늘 국립극장에 마당에 몽골텐트를 다섯 동이나 쳤는데, 그 녀석들 지금 무사할까?
모래주머니도 꽁꽁 매어놓고
뒤돌아나오면서 마음으로 간절히 빌었는데....
아랍문화축전.
내일 개막이다.
관심없는 세계였는데... 일하면서 알았다
정말 세상엔 알아갈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거.....
그리고.. 다르면서도 많이 비슷하다는 거.
시간이 더 있었다면..
크게 의미있었을 축제.
한 달 만, 2주만, 일주일만, 아니 3일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많이 고민하고 힘들었는데,
제대로 윗 단추까지 못채웠는데 문 열고 나가야 할 판이다.
현장에서 넘치는 관객 때문에 쓴소리를 들을 수 있고,
공짜 공연, 역시나 그렇듯 900명 관객이 300명으로 줄 수도 있겠지.
어떻게 되든 여기 저기 나는 눈치를 봐야 하고 정신없이 뛰어다니겠지..
그래도 하늘 보고....
웃을 수 있길 바래본다..
이제는 그냥 가는 거다......맘 졸여도.....벌써 바퀴는 돌고 있고
이번이 끝나면. 또 하나를 배우겠지...
이 마음을 갖고 간다....착하지만 진부한 마음으로.
나의 열 다섯 번째 프로젝트가 드디어 내일 시작이다.
가자! *^^*
꽉 찬 서른살 생일.
내 친구 앨리스가 생일날을 맞았다.
술말고, 춤말고, 그냥 조촐하게 맛있는 밥을 먹고 싶다는 친구 덕분에
자정까지 색깔없는 표정으로 야근할 뻔했던 우울한 처지를 벗어날 수 있었다.
'肉 갑하네' 고깃집 주인으로의 센스와 서비스 정신까지 나무랄 데 없는 여사장님 덕분에
방문 하루 만에 육갑하네홀릭을 만들어버린.
명품 껍데기 집에서...우리는 그렇게 앨리스의 서른 살 생일을 기다렸다.
요즘 부쩍 행복해보인다. 살짝 과한 거 아닌가..염려도 되지만.. 그래도 밝은 언니 모습이
안심이 된다. _사이다 언니.
세상에서 가장 유치한 연애를 꿈꾸던 星愛낭자, 요즘 그녀는 오롯한 연애모드다. _슈테른
술 마실 때마다 한 뼘씩 가까워지는 것 같은 친구. 일할 때 같은 동기라는 것을 무지 자랑스럽게 만드는 또 한 명의 서른 살 _어화.
윙보이 라인이 되었단다. 오빠가 그랬다. 슬림한 라인의 정장과 포인트 강한 넥타이를 입혀주고 싶게 했던 이 날 윙보이의 음.. 살짝 난감했던 패션. _스윙보이.
나라야... 힘내라. 다 지나간다..._금나라 그리고 그의 동창생.
그리고 우리 앨리스.
요즘 내 친구도 연애를 한다. 항상 친구의 독특한 감정의 진도를 궁금해하며 전화질을 할 때가 그냥 좋다.
저 예쁜 얼굴이 부서질 것처럼 환하게 웃을 때...앨리스가 진짜 백만불 짜리 미소가 나온다...
친구가 딱 요 시기에 태어나줘서, 지루하게 일만 많았던 봄이 행복해졌다.
춤을 출 때 팔과 팔 사이의 그 어색한 간격마저도 매력으로 만들어버리는 홍대 미대 브랜드의 내 친구 앨리스..너의 그 당당한 뮤지컬리티 정신에 손을 높이 들며....
서른 살,. 생일 정말 진심으로 축하한다.
나도... 그렇다.
꼭 미리 생일 선물 받은 것처럼.... 니가 그렇다...친구. ^^
결국 생일케익은 요즘 우리 딴따라들의 새로운 아지트가 된 제인스 그루브에서 가졌다.
손님은 우리뿐. 텅빈 클럽에서 맘껏 소리치고 웃고 떠들며...
그렇게 친구의 생일에 박수를 보내줬다.
손수 만든 스타일리쉬한 단추 귀걸이로 작은 탄성을 보내며... 어울리지 않게 예쁜 화분을~ 준비한 나라. 나의 우산..(너의 미적 수준을 고려하느라 힘들었다.. )
앨리스를 자극시킨 어화의 섹시한 드레스. 그리고 맛 좋은 초콜렛 케잌까지. (윙보이의 선택)
유치한 선물 풀어보는 재미까지.
우리 이 날 유치했다. 그래서 그렇게 행복했나......
앨리스. 생일 축하한다.
그대 덕분에 새벽까지 유쾌하고 또.. 행복했어.
생일 축하해~ 친구.
뒤늦게 합류한 깜악귀와 어색했을 법했으나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해준 나라의 부산 동창생
역시 78은 강하다(?) 아님.. 하나다? !!! ㅋㅋㅋ
2008. 06.05(Thu.)~06.08(Sun.)
국립극장 KB청소년 하늘극장
알제리 민속무용단/ 리비아 국립민속예술단
사우디 아라비아 남성 전통검무단
요르단 헤일 전통공연단
모로코 땅제 안달루시아 오케스트라
요즘 참 나 바쁘다.
마음도 분주하고 솔직히 불안도 하다.
공연단은 별 탈 없이 입국할 수 있을지, 준비하는 전시며 워크숍이며
필요한 것들은 잘 준비될 수 있을지
무료 공연인데 과연 객석은 얼마나 찰 수 있을지
매체들은 또 얼마나 떠들어줄 수 있을지
그 속에서 나는 잘 중심을 잡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동안의 경험적 데이터를 의지하기도 하고, 사람을 믿기도 하고
혹은 믿지 않는 것이 가장 최선이 되기도 할 것이다.
단순히 이국적이거나 새롭거나 어쩌면 우리가 준비한 것들은
딱 그 정도의 수준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축전이 '호기심' 그 자체가 되어주길 욕심내본다.
히잡 속에 감춰진 그들이 궁금해졌으면 한다.
헐리우드 영화 속 종종 등장했던 '나쁜 사람'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싶다.
그런 생각에.....
허겁지겁 뛰어다니는 그 한 발 한 발에 보람을 담아본다.
오늘, 리비아대사관 미팅에서 주한 리비아 대사님과 함께
2008.05.05 홍대 놀이터_ 딴따라 땐스홀 봄3반 졸업공연 photo by 당산철교 님
2008.05.05 홍대 놀이터_전주국제영화제 공연팀 일동 photo by 당산철교 님
2008.05.11 남산_햄돌이 결혼식이 끝나고 이어진 남산 소풍에서
2008. 5.11 서울광장_하이서울페스티벌
요즘 나의 삶을 함께 하는 사람들...
상황, 감정, 그리고 처지가 달라지면...
지금 바로 내 옆에서
내 연애사를 궁금해하며 염려해주고...
때로는 격려를, 때로는 충고를 그리고 재미와 감동까지도 덤으로 주는
지금 친구들은
또 다른 누군가로, 다른 사람들로.......
변할 것이다....
사랑할 수 있을 때...
나눌 수 있을 때...
아낌없이 함께 하자....
친구들....
혼자 하는 심심한 여행
통영에서의 2박 3일 혹은 3박 4일....아니면 5박 6일... 이 될지도 몰랐던
대략의 계획만을 가지고 떠난 나른했던 이른 봄날의 시간에 어느덧 마침표를 찍고 돌아왔다. 횅한 바다 고적한 섬, 낚시배와 파도, 온통 풍경사진으로만 남겨진 메모리카드.
여행이 절실하지는 않았다.
이미 터키와 일본을 다녀왔고 일보다는 '춤'에 더 빠져있던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만 시간이 주어졌는데 어디라도 다녀오지 않으면
왠지 완벽한 휴가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압박감!
회사에 다시 출근한지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지났고출근시간이 10시에서 9시 반으로 당겨지는 별로 달갑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돌아와보니...의미없이 이방인처럼 돌아다녔던 그 시간들이 그나마 생각할 거리들을 주는 걸 보면 역시나 잘한 일인 듯.
작은 물병 대신 '옥수수 수염차'를, 먼지 낀 카메라 대신 캐논 EOS400D 행여나 충격받을까봐
가방 안에 꼭꼭 넣고 휘파람도 불지 못하고 늦은 밤에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지만
운동화를 신고 배낭을 메고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말 그대로 '출발'의 한 소절이었다.
첫 차를 타고 새벽 4시 40분 통영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역 앞 편의점이었을 것이다. 조용한 새벽 공기를 타고 유행가 한 소절이 흘러나왔다.
딱 15분 동안 정신이 멀쩡해진다는 말이 기억났다. 어느 드라마에서 였는데.....
정말로 그런가하는 마음으로..... 캔커피를 후루룩, 마치 우동 국물 마시는 것 같다.
역시나 달짝지근하다.
지도 한장을 챙겨서 택시를 타고 여객터미널로 향했다.
10분 거리라고 하는데... 한참을 간다.
북적거리는 새벽 항구를 연상했는지, 조용하고 깜깜한 터미널의 모습이 조금은 실망스러운.
매물도로 가는 첫 배
여객터미널에서 출항을 기다리며...찍어놓고 보니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해협의 해질 녁
풍경과 많이 닮았다.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배를 채우고 도시락을 사서 매물도 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역시나 멀미가 걱정이다.
아침공기가 좋다. 갈매기 소리도 귀를 즐겁게 하고 창밖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름 모를
섬들...
찍어놓고 보니 여느 관광책자에서 보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지만.
등산공포증이 있는 나에겐 매우 소중한 사진들이다.
민가라고는 손에 꼽히는 몇 채의 집
숨돌릴 틈도 없이 끝없이 올라가야 하는 그닥 친절하지 않은 등산로
졸린 눈. 미끄러지는 발. 무거운 가방.
하지만 무엇보다 아쉬웠던 것은 높이 올라갔을 때 뺨에 닿는 그 신선한 공기의 감촉을....
마치 딴 세계에 있는 것 같은 이국적인 설레임을..
아니 마냥 좋은 그 풍경들에 대한 감상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없다는 것.
혼자였다.
통영으로 돌아오는 배안에서 한참을 잤다.
멀미를 이겨냈고 바닷가 짠 바람에 감기가 두려웠는데 두통도 사라지고.
조금은 힘이 나는 듯.
To be continued....
아주 멀리까지 가보고 싶어.
그 곳에서 만날 수가 있을지.
아주 높이까지 오르고 싶어
얼마나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을지
작은 물병 하나 먼지낀 카메라 때묻은 지도
가방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변운 발걸음 닿는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멍하나 앉아서 쉬기도 하고 가끔 길을 잃어도 서두르지 않는 법
언젠가는 나도 알게되겠지
이 길이 곧 나에게 가르쳐줄 테니까
촉촉한 땅바닥 앞서간 발자국 처음보는 하늘 그래도 낯익은 길
언덕을 넘어 숲 길을 체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새로운 풍경에 가슴이 뛰고 별걸 아닌 일에도 호들갑을 떨면서
나는 걸어가네 휘파람 불며
때로는 넘어저도 내 길을 걸어가네
내가 자라고 정든 이 거리를
나는 가끔 그리워 하겠지만
이렇게 나는 떠나네 더 넒은 세상으로
<김동률의 '출발' >
보스포러스 해협의 해질녁 풍경 Photo by Fehrat
작정하고 떠났다. 돌이켜보면 뭔가가 절실했던 거다.
지난 연말부터 내 생활에 '터키'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역시 충동적인 일탈로부터 시작된 다소 위험한 기폭제였으니...
지금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어느 터키남자와의 인연(?) 이 시발점이었다.
어찌되었든 출장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이스탄불로 떠났다.
명목상의 출장. 터키여행관련 도서를 두 권이나 사서 읽었고 꼭 가봐야 하는 명소 몇 군데도
꼼꼼하게 체크해두었다. 터키남자들이 한국여자들에게 친절하다는 얘기는 이미 많이 들었던
만큼 그 친절한 사람들 중 옥석을 가르는 게 관건. 하지만 경계심 제로였다고 고백한다.
흐린 하늘 속 성 소피아 성당 photo by Hilary
소기의 출장 목적을 달성하고 이스탄불에 도착한 지 3일 째 되는 날
나는 상당히 찐하게 생긴 터키 남학생의 에스코트를 받고 택시에 탔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아 걸려오는 수작을 제대로 받아줄 수 없음이 안타까웠을만큼
눈이 즐거워지는 청년이었다) 그리고 술탄아흐멧으로 출발!
공기입자에서도 역사의 무게가 느껴지는 이스탄불 구시가의 모습은 구름낀 우중충한 날씨 탓에 왠지모를 비애감을 주었다. 2초를 넘기지 않는다. 눈만 마주치면 곧잘 상인들이 다가와 말을 건다. 일본인이지 중국인지 대략 상황파악이 끝나면 '잘 지내셌쎄요? ' 라고 묻는데 처음 보는 사람한테 갑작스럽게 박명수 식 어법의 우리말을 듣게 되면 그가 아무리 상업적인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냥 웃음이 나고 대꾸를 해주고 싶어진다.
성소피아 성당이 눈 앞에 있었다.
등 뒤로 블루 모스크 , 그리고 바로 그 앞에 그 친구가 있었다.
솔직히 그의 첫 멘트가 기억나지 않는다. '영어할 수 있어요?' 였는지 '여행 중이세요' 였는지
어쨌든 그는 자신을 '포토그래퍼, 페랏'이라고 소개했다. 스물 여덟의 갈색눈동자, 곱슬머리, 작은 키의 터키 남자 상당히 스피디한 영어로 가는 곳마다 설명에 설명을 거듭하며 충직한 투어가이드가 되어 준 그 사람이 자칫 평범할 뻔했던 내 터키 출장에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주었다.
가이드 책에 소개된 이스탄불의 역사, 남녀상열지사의 뒷 담화, 위대한 전쟁의 기록, 이슬람교와 기독교 그리고 자유분방한 터키 젊은이들의 생각까지. 무엇보다 생활 속에서 이들이 먹는 음식, 간식, 지나다니는 길, 자주 들락거리는 슈퍼마켓과 게임방(?) , 축구와 터키남자, 터키식 티의 정겨운 문화까지.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친절했던 페랏.
그는 분명 나와 같은 경험이 적지 않았을, 마음을 풀어놓고 자유로워질 준비가 되어 있는 누군가와의 짦은 로맨스가 익숙한 친구였을 것이다.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바다를 상대로 장난질을 걸다.
나를 위해 특별한 요리를 해준 페랏 photo by Hilary
일탈이었다.
언젠가 나에게 로맨틱한 일탈을 선물하고 싶었고, 터키 그리고 페랏은 내게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추억과 시간을 주었다.
현재 페랏은 군복무 중이다.
터키 젊은이들도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하는데. 기간은 우리보다 짧다.
가끔 휴가를 나오거나 외출을 할 때면 메신저를 통해 말을 걸어오는데..
그는 항상 똑같은 질문으로 웃겨준다.
'Hi. Do you remember me?'
다시 가고 싶다. 그를 처음 만난 블루 모스크 정문과 그와 함께 갔던 터키 전통 음식점.
그가 장미를 선물했던 어느 시장길 모퉁이. 화려한 향신료와 티팟이 가득했던 시장통.
값싸고 달콤한 냄새가 인상적이었던 물담배 가게.
그리고 그가 자주 다니던 과일가게, 정육점.
마지막으로 보스포러스...
잘 지내지..?
당근. 아직도 너를 기억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