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포러스 해협의 해질녁 풍경 Photo by Fehrat
작정하고 떠났다. 돌이켜보면 뭔가가 절실했던 거다.
지난 연말부터 내 생활에 '터키'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역시 충동적인 일탈로부터 시작된 다소 위험한 기폭제였으니...
지금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어느 터키남자와의 인연(?) 이 시발점이었다.
어찌되었든 출장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이스탄불로 떠났다.
명목상의 출장. 터키여행관련 도서를 두 권이나 사서 읽었고 꼭 가봐야 하는 명소 몇 군데도
꼼꼼하게 체크해두었다. 터키남자들이 한국여자들에게 친절하다는 얘기는 이미 많이 들었던
만큼 그 친절한 사람들 중 옥석을 가르는 게 관건. 하지만 경계심 제로였다고 고백한다.
흐린 하늘 속 성 소피아 성당 photo by Hilary
소기의 출장 목적을 달성하고 이스탄불에 도착한 지 3일 째 되는 날
나는 상당히 찐하게 생긴 터키 남학생의 에스코트를 받고 택시에 탔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아 걸려오는 수작을 제대로 받아줄 수 없음이 안타까웠을만큼
눈이 즐거워지는 청년이었다) 그리고 술탄아흐멧으로 출발!
공기입자에서도 역사의 무게가 느껴지는 이스탄불 구시가의 모습은 구름낀 우중충한 날씨 탓에 왠지모를 비애감을 주었다. 2초를 넘기지 않는다. 눈만 마주치면 곧잘 상인들이 다가와 말을 건다. 일본인이지 중국인지 대략 상황파악이 끝나면 '잘 지내셌쎄요? ' 라고 묻는데 처음 보는 사람한테 갑작스럽게 박명수 식 어법의 우리말을 듣게 되면 그가 아무리 상업적인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냥 웃음이 나고 대꾸를 해주고 싶어진다.
성소피아 성당이 눈 앞에 있었다.
등 뒤로 블루 모스크 , 그리고 바로 그 앞에 그 친구가 있었다.
솔직히 그의 첫 멘트가 기억나지 않는다. '영어할 수 있어요?' 였는지 '여행 중이세요' 였는지
어쨌든 그는 자신을 '포토그래퍼, 페랏'이라고 소개했다. 스물 여덟의 갈색눈동자, 곱슬머리, 작은 키의 터키 남자 상당히 스피디한 영어로 가는 곳마다 설명에 설명을 거듭하며 충직한 투어가이드가 되어 준 그 사람이 자칫 평범할 뻔했던 내 터키 출장에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주었다.
가이드 책에 소개된 이스탄불의 역사, 남녀상열지사의 뒷 담화, 위대한 전쟁의 기록, 이슬람교와 기독교 그리고 자유분방한 터키 젊은이들의 생각까지. 무엇보다 생활 속에서 이들이 먹는 음식, 간식, 지나다니는 길, 자주 들락거리는 슈퍼마켓과 게임방(?) , 축구와 터키남자, 터키식 티의 정겨운 문화까지.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친절했던 페랏.
그는 분명 나와 같은 경험이 적지 않았을, 마음을 풀어놓고 자유로워질 준비가 되어 있는 누군가와의 짦은 로맨스가 익숙한 친구였을 것이다.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바다를 상대로 장난질을 걸다.
나를 위해 특별한 요리를 해준 페랏 photo by Hilary
일탈이었다.
언젠가 나에게 로맨틱한 일탈을 선물하고 싶었고, 터키 그리고 페랏은 내게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추억과 시간을 주었다.
현재 페랏은 군복무 중이다.
터키 젊은이들도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하는데. 기간은 우리보다 짧다.
가끔 휴가를 나오거나 외출을 할 때면 메신저를 통해 말을 걸어오는데..
그는 항상 똑같은 질문으로 웃겨준다.
'Hi. Do you remember me?'
다시 가고 싶다. 그를 처음 만난 블루 모스크 정문과 그와 함께 갔던 터키 전통 음식점.
그가 장미를 선물했던 어느 시장길 모퉁이. 화려한 향신료와 티팟이 가득했던 시장통.
값싸고 달콤한 냄새가 인상적이었던 물담배 가게.
그리고 그가 자주 다니던 과일가게, 정육점.
마지막으로 보스포러스...
잘 지내지..?
당근. 아직도 너를 기억하고 있다...!!!!